이런 부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무라카미 류의 글이 어떤지 궁금해서 펴봤다.
지난 번역 작업이 한없이 늘어지면서 내 마음속, 머릿속에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었다.
길고 긴 작업에 모든 걸 다 쏟아부은 것인지 번역을 어떻게 하는지도 잊어버린 듯 머리가 텅 비어 있었다.
한참을 쉬면서 이것저것 해봤지만 책에는 영 손이 안 가서 마음이 불편했다.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읽는 것이 공부이고 다음 작업을 위한 자양분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친 머리가 글 읽기, 문장 해석과 분석을 거부하는 듯하여
가능한 한 많은 생각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른 게 『라인』인데, 문장은 눈에 쉽게 들어왔지만 내용상 잔인한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불편했다.
책 표지에 실린 문구는 이렇다.
신경증, 피해 망상, 대인 기피증, 폭력 충동, 거짓말, 미각 장애, 이상 성애에 사로잡힌 18명의 인물이 엮어내는 연쇄 소설.
라인을 흐르는 전기 신호를 읽을 줄 아는 유코,
그녀의 신비한 능력을 통해 단절된 타인과의 라인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그려낸 문제작!
챕터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다음 챕터에서 그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이 독특했다.
처음 읽을 때는 각 인물에 관해 더 자세한 추가 설명 없이 궁금증만 유발하고 넘어가는 이 구성이
뒷부분에 뭔가를 짠! 하고 보여줄 생각인가 싶었다. 한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간다.
몇 챕터를 읽고 나니 나도 적응이 되어서 라인을 타고 흘러가듯 읽었는데 중요한 주제는 막바지에 제시된다.
그리고 작가의 말과 옮긴이의 말에서 조금 더 정확한 해석을 얻을 수 있다.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현대인의 소통 문제'가 주제 또는 소재랄까?
다시 읽어보면 조금 더 깊이 파고들 수도 있을 텐데, 잔혹한 장면 묘사가 마음에 걸려서 재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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