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부산 안락동 모 문방구에서 구매했던 손오반 피규어(아마도 반다이제).
당시 가격이 4000원 정도로 기억되는데,
죠스바가 100원, 치토스가 200원, 초코파이 12개들이 한 상자가 1200원이던 시절이다.
슈퍼마켓에서 초코파이나 오예스는 100원이나 200원에 하나씩 팔기도 했다.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일정 기간마다 받는 용돈이 따로 있던 것도 아니어서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피규어는 꼭 사고 싶었던지 겨우 4000원을 모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생각해보면 4000원이 맞나... 싶긴 한데 내 머릿속에는 4000원으로 딱 각인이 되어 있다.
그 시기에 타미야 미니카가 6000원이었고 그런 류의 장난감들 가격이 그 언저리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시절 4000원이 그렇게 큰 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저축을 잘 못 하던 13세 입장에서는
한 번에 쓰기에 너무 큰 금액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비쌌을지도 모르고
손가락 크기만한 장난감을 저 값에 턱턱 살 만한 그런 형편도 아니었으니까.)
아이큐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1989년부터 드래곤볼은 거의 매주 볼 수 있었는데,
다른 학교로 이사를 가거나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더라도 늘 우리 반에는 아이큐점프를 사서
별책부록인 드래곤볼을 가져오는 친구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
특히 국내 연재 초기에는 '도라곤의 비밀' 같은 제목이 붙은 500원짜리 드래곤볼 해적판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주간 연재에서 못본 내용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닥터 슬럼프 해적판도 참 많이 봤었다.
이런 책들은 제목도 다양했고 캐릭터 이름도 원작과는 달랐다. 다만 커버 색상은 거의 다 주황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991년 언젠가 아이큐점프에서 야광 드래곤볼 7개를 매주 하나씩 부록으로 줬었다.
내가 아이큐점프를 처음 샀던 게 그때쯤인데, 주황색 4성구를 받는 주였다. 드래곤볼 속에는 지우개가 있었다.
그때 드래곤볼 표지가 이거였다.
그림이 너무 멋져서 몇 번이고 봤던 기억이 난다.
프리더의 3단 변신이 처음 등장한 화였던 것 같기도 한데
겉보기에는 변신 전보다 약해보여서 '에이, 이게 뭐야~' 하고 약간은 실망했던 기억도 난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는 언제 오공이 프리더랑 맞붙느냐였는데 그 화에서는
오공이 아직 치료를 받는 중이어서 조금 김이 새기도 했다.
부록으로 받았던 야광 드래곤볼은 한동안 집에서 굴러다녔으나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이 안 난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드래곤볼 GT를 열심히 봤다.
원작 연재가 끝난지 꽤 된 시점이었는데 드래곤볼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오프닝, 엔딩 곡들이 그 무렵 한창 관심을 두었던 빙계열 음악이어서 더 좋았다.
최종화 엔딩을 보면서는 정말 드래곤볼이 끝났구나 싶어서 울기도 했다.
'드래곤볼'이라고 하면 한순간에 이렇게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매주 너무너무 기다려지고 궁금했던 만화였고
처음 접한 순간부터 그 뒤로 십수 년간 공기처럼 어디에나 늘 존재했던 그런 만화였다.
요즘도 일부러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그때와는 또 다른 형태로 매주 드래곤볼을 접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 원작자인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선생의 부고 소식이 들려서 슬펐다.
그 덕에 옛 일들을 끄적이다 보니 내가 드래곤볼을 정말 좋아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세상 수많은 소년들에게 즐거움과 희망, 추억을 안겨주신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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