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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재미/책

톨스토이를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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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생일에 친구가 선물로 준 책.
그때 앞부분을 읽어보다가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접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새 책 상태로 깨끗하게 14년을 보내다 오늘 마침내 책으로서의 기능을 했다.
나는 톨스토이의 이름만 알지, 그의 작품은 읽어본 일이 없다.
톨스토이 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 작가들의 고전 문학 작품도 손에 꼽을 만큼 읽은 적이 적다.
어릴 적에 주로 읽은 책은 전기나 역사, 과학책이 대부분이었고, 더 자라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만화는 읽었지만 소설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는 게 그 이유이리라 생각한다.
18세 생일날 친구에게 선물 받은 《톨스토이를 생각하세요》에는 일곱 가지 단편이 실렸는데,
각 글은 어떤 형태로든 톨스토이와 연관을 맺고 있다. 글의 주제가 톨스토이의 소설과 관련이 있다든지,
글 내부에서 특정한 소재로 언급되다든지, 혹은 작가가 단편 끝부분에 부수적으로 그 관련성을 설명한다든지 해서.
각 단편의 제목은 이러하다.
<초연일 저녁>, <상처>, <일식>, <내일 하루의 이야기>, <오래 전>, <추억>, <마지막 절단>
집착과 무의식을 다룬 <일식>,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인의 정체성 유지 방법을 이야기한 <오래 전>,
암에 걸린 피아노 연주자의 생존 투쟁을 그린 <추억>, 등장인물들이 아는 갖가지 절단을 소재로 다룬 <마지막 절단> 이 네 편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생각에 깊이 빠져 들었다.

책 뒤편에는 이런 소개글이 보인다.

자괴감, 열정, 광증, 욕망...
한 순간에 존재를 뒤흔드는
감정들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이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뇌했던
톨스토이에 대한 추억이다.

선물 받은지 14년이나 지나서 이 책을 읽은 것은 내가 8월 한 달 간 읽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읽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과거의 책을 머릿속에 넣어 정리하려는 심산에서이다. 14~15년이라는 기간에
소유는 했지만 읽지 못해 왠지 공백처럼 느껴지는 자리를 메꾸려고 밀린 숙제를 하는 행동이랄까.
과연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물론 지식의 축적이라는 가치는 있을 터), 이 긴 휴식기 동안
그리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꾸역꾸역 종잇장을 넘기고 있다.

톨스토이 개인에 관한 이야기나 그의 작품은 모르므로, 이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 특별히 일곱 가지 단편과
톨스토이와의 연관성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다만 작가가 글 속에서 제시한 내용만으로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만
이해할 따름. 하지만 글 자체가 주는 교훈, 혹은 생각할 점은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지금은 그것만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이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또 이것으로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만하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으려나?
아마도 이런 결과를 위해 이 책은 14년간 내 책장에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어볼지는 의문이다.

하는 일 때문에 여기서도 나는 번역이 어떤지 어쩔 수 없이(?) 꼼꼼하게 살폈다. 신경 쓰기 싫어도 절로 신경이
가는 부분이라 하는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ㅠㅠ 내용이 대체로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건 아마도 프랑스어의
특징이나 작가의 문체로 말미암아 그렇지 않나 싶다. 또한 지금처럼 웹 상에서 뚝딱 문법이나 글의 표기법을 확인할 수 없었던 1990년대 후반의 글이라 그럴까, 번역투가 종종 보이고 이중피동 표현이 많다. '-어지다'를 줄인 '-져'가 자주 보여 글을 읽는 내내 부드럽게 흘러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이 다소 늘어지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물론 내가 집중해서 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도 가끔 보인다. 이쪽 일을 하면서 경험한 바로, 문장이 늘어지거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이해하기 다소 까다롭게 전개되면 오역이 나오거나 더 쉬운 말로 바꿀 만한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원문을 모르니(게다가 프랑스어라 더더욱 모름)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요즘은 번역서를 볼 때마다 번역의 기술 혹은 표현과 관련된 이런저런 부분을 나도 모르게 뜯어보는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번역한 책에서도 흠이 발견되리란 생각을 하면서 더 꼼꼼해져야 한다고 의지를 다지게 된다.

여하튼, 앞으로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밀린 숙제를 다 하고 나면 새로운 숙제가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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