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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재미/책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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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31일에 해운대 한양서적에서 구입한 책. 

고2였던 당시에 일본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자주 접하면서 일본 대중문화에 한참 관심이 많았다. 

그때는 일본 문화개방이 되지 않았던 터라 책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는데,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를 필두로 몇 년간 일본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내가 선택한 책은 김지룡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와 이규형의 《J.J가 온다》 《J.J 베스트 1000》, 

《日本 인기가수 컬렉션》이었다. 

당시의 주요 관심사가 음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서브컬쳐를 주로 다룬 책만 산 것이다. 

아무튼 인터넷 사용 시간이 지금보다 수 배는 짧았던 시절에 

하나라도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열심히 읽었던 책이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으로 《닌텐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제프 라이언 저, 에이콘, 2015년 출간), 《인공지능 시대의 삶》(한기호 저, 어른의시간, 2016년 출간)이 있는데,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는 거의 20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앞선 두 책에서 다루는 내용과 일부분 연결되어 있다. 

일본의 게임업계를 다루는 만큼 닌텐도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라 제프 라이언의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고 

20년 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이 현재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어 

우리 현실을 살피고 미래의 삶을 논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삶》의 내용과도 중복되는 면이 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책에서 비슷한 정보가 연쇄되는 것은 책 읽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문화개방 이전인 98년에 그 후를 예측하는 책이긴 하지만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적용될 만한, 혹은 우리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 담겼다. 

(발췌문에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기만 하면 우리나라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32쪽)

일본의 리더들은 시장의 자율성보다는 자신이 책상에서 정리한 기획안이,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보다는 자신들의 한 마디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57쪽)

헌신적인 근면함에도 결국 세상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젊은이들은 그다지 삶에 고무되어 있지 않다. 이 배신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 내가 잘 살고 있는지조차 자신할 수 없는 이 지긋지긋한 일상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주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당장 좋아지리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단지 살아 있자. 그리고 견디자는 것이다. 


(103쪽)

선진국 메인 컬처의 라이프 스타일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교외에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전형이 대기업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출세해서 큰돈을 버는 여피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런 라이프 스타일은 고도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한 부모 세대에서나 가능했다. 경제가 정체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완만한 성장을 하는 시대에서는 젊은이들 모두가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누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피땀 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지도 않다.


(143쪽)

정부의 과보호를 받으며 정경 유착 속에서 커 온 한국의 재벌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들판에서 견딜 수 있는 건 잡초뿐이다.


(145쪽)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창의성으로 먹고 사는 업체는 창의성이 있는 크리에이터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말이다.


(205쪽)

철강, 조선, 자동차, 가전, 반도체 등 1960년대 이후로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어 왔던 산업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224쪽)

폭력을 근절시키고 싶다면 사회를 고쳐야 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만만한 대중 문화 상품을 마녀사냥 하는 '폭력'부터 없애야 한다.


(229쪽)

21세기는 명문대를 나오더라도 출세가 보장되지 않는다. 정답이 없어져 가는 현실 속에 정해진 답을 찾는 데 귀신인 입시 공부의 명수가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232쪽)

만화를 보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공부이다. 오히려 공부를 만화만큼 재미있게 못 만드는 현행 교육이 문제이다.


(240쪽)

정부는 합리적인 규칙을 만드는 선에 그쳐야 한다. 또한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발생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마녀사냥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결벽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건 정부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지만.


(250쪽)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애들 코 묻은 돈을 노리는 산업이라는 편견 말이다.


(253쪽)

이러한 시대에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은 '자신의 의미 찾기'이다. 나약하다고 윽박지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들에게 차근차근 자신에 대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15~20년 전 일본 이야기가 지금 우리나라 모습하고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예언서였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에 작가가 비판한 우리나라 실정은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20세기 말 일본의 젊은이들과 헬조선을 외치는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일치한다. 

창의성 면에서는 지금의 한국이 20년 전 일본보다 못한 것 같고...


아마 고등학생 때는 별 생각 없이 읽었을 텐데,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

(일본 대중 시장의 변화, 한류의 전파, 문화개방, 국내 만화계의 좌절과 웹툰의 등장 등)를 곱씹어 보며 읽으니 

한층 재미도 있고 우리나라 서브컬쳐계에 아직 무엇이 부족한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옛날에 나왔지만 여전히 읽고 참고할 만한 책이고 

창의성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정부 인사들이 약 20년 전의 케케묵은 조언과 아이디어를 접하고 

열심히 대갈빡 굴리는 데 활용해야 할 책이다.



네이버 책 정보




일본 대중문화의 저변과 현상을 밀도있게 살핀 책. ` 천황을 읽으면 일본 주류문화가 보인다` `X-저팬의 짙은 화장을 지우면 일본의 인디문화가 보인다` 등 53편의 글을 통해 일본의 음악, 방송, 문학, 영화 등 대중문화의 이모저모와 의미를 사진과 함게 살폈다.


목차


1. 일본 문화의 심장을 해부한다
선동열을 읽으면 일본이 보인다/ 천황을 읽으면 일본 주류 문화가 보인다/ 한일 축구전에서 왜 미우라만 기미가요를 부를까?/ 일본에는 왜색 패션이 없다/ <에반게리온>을 보면 일본의 젊은이가 보인다/ DJ석방운동을 한 젊은이들은 누구인가


2. 일본 문화의 파워는 이것
`오타쿠`라는 이름의 기이한 사람들/ 선도적인 창조력은 오타쿠에서 나온다/ 왜 일본에만 오타쿠가 생긴 것일까?/ 전국의 오타쿠여 일어나라/ 열중은 하지만 열광은 하지 않는다/ 오타쿠 시장의 파워와 한계/ X-저팬의 짙은 화장을 지우면 일본의 인디 문화가 보인다/ 볼륨을 높여라, 인디 미디어의 발달/ 대안은 많을수록 좋다/ 일본 문화의 힘은 서브컬처에서 꽃 핀다


3. 일본 문화의 성공은 마케팅이다
마케팅에 웃고 마케팅에 운다. 고무라 사단/ 꿈을 잃은 소녀들의 선택, 아무로 나미에/ 지금은 백화점식 아이들 시대/ 편집자가 물어다 준 여의주, 드래곤 볼/ X-저팬과 넥스트의 공통점은/ 손해 봐도 장사가 잘되는 이유가 있지요


4. 왜 일본 문화 상품이 세계적으로 재미있는가
왜 모두들 일본 만화에 열광하는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가슴 아픈 성공 비결/ 왜 퇴마, 귀신, 혼령 이야기가 많은가?/ 지금 일본 만화는 음모 사관이 유행 중/ 일본 만화가 언제부터 선정적이게 됐는가/ 수많은 장르가 평화적으로 공존한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오래간다/ 일본 대중 음악 경쟁력의 숨은 비밀/ 순수 문학은 순수하지 않다/ Two 무라카미(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류) 현상/ Two 무라캄 이후를 노리는 작가들/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승리/ 여성 작가가 중심에 서다/ 일본에서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작가, 유미리/ 일본 영화의 국적은 과연 무엇인가/ `천덕꾸러기들`이 살린 일본 영화/ 뤽 베송을 한 수 가르친 오시이 마모루/ 기획의 빈곤으로 지탄받는 일본 영화/ 디지털 엘리트의 탄생/ 게임이 아니라 쌍방향 영화이자 소설이다/ 닌텐도의 몰락과 소니의 상승 비결


5. 우리가 극복해야 할 편견과 오만

편견과 무지가 만들어 낸 용어 `저패니메이션`/ 한국의 골 깊은 일본 표절 문제/ 일본 대중 문화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가/ 과연 선정적인 것은 잘 팔리는가?/ 만화만 봐도 서울대에 간다/ <빨간 마후라>에 대하여


6. 우리는 일본에 무엇을 팔 것인가?
21세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대/ 한국 구세대의 실패/어떻게 팔 것인가?/ 무엇을 팔 것인가?



연관 도서로 위에서 설명한 《인공지능 시대의 삶》과 《닌텐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를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순서는 《인공지능 시대의 삶》 ->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 《닌텐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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