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각적 재미/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728x90


책 아래쪽에 도장이 찍힌 걸 보니 2002년 1월 10일에 샀나 보다.
그때 지루함을 견디며 거의 끝까지 읽다가 결국은 다 읽지 못한 책인데
이것 역시 '예전에 다 읽지 못한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목표에 포함되기에 읽기 시작했다.

책을 샀을 때보다 열 살 정도 더 먹었으니 '내용이 조금 다르게 다가올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는데,
내용은 둘째치고 번역문 때문에 도저히 집중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복수 표현에는 추상 명사든 가산 명사든 어김없이 '-들'이 붙고
이중 피동은 잊을 만하면 꼭 한 번 다시 나오고 '-수 있다'와 '-것'은 한 문장 건너마다 보이며
상투적인 번역투와 군더더기 표현이 많아서 저자의 생각에 바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잉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철학을 자유롭게 풀어낸 책이니 읽기가 그만큼 더 쉬워야 하는데 문장 하나하나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턱턱 걸리는 형국.

내용 면에서는 '느림'을 찬양하고 삶의 곳곳에서 느림의 흔적을 드러내며 급하지 않고 천천히
각자의 속도대로 나아가자는, 대충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었지만 한 문장 걸러 한 문장마다 거치적거리는
번역투 때문에 집중해서 읽기가 어려웠다.
2001년 고려대 인문계와 자연계 공통 논술 문제로 본문의 일부가 출제되었다고 하는데
출제자는 내용의 중요성만 본 게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든다.
웬만하면 편하게 읽고 내 나름대로 '느리게 사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문장이 온갖 방해를 한 탓에 결국 지루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책 이름으로 웹 검색을 해본 바 누군가가 '국어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읽겠다'라고 했는데
그런 목적으로는 읽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듯이
국어 공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느림'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사족을 덧붙이자면,
오늘 낮에 KBS1에서 방영한 '백년의 가게'라는 방송이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더 잘 보여준 듯하다.
'우 메드비드쿠(U MEDVIDKU)'라는 체코의 전통 맥주 양조장/가게를 소개하는 방송이었는데
책에서는 희미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느림'이 무엇인지, 또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우 메드비드쿠의 사장인 얀 고에텔 씨와 맥주장인 라디슬라브 베셀리 씨를 보며 눈으로 확인했다.
신기하게도 책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혹은 그 밖의 매체나 주변 환경을 둘러볼 때마다
그 전에 본 책의 내용이나 관련성이 곧장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728x90

'감각적 재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0) 2012.10.13
고등학교 3년을 7일만에 끝내는 물리  (0) 2012.09.18
국어 번역문과 번역 글쓰기  (0) 2012.09.06
1984년  (0) 2012.09.03
시간이란 무엇인가?  (0) 201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