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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재미/책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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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책.
표지 사진을 웹에서 찾아보니 절판이 됐는지 파는 곳도 없고 큰 사진이 없더라.
앤드루 코완이라는 스코틀랜드 작가의 소설인데(원서 제목은 Common ground)
최근에 포스팅했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끝까지 본 적이 없어서 다시 꺼내들었다.
사실 책을 펴서 읽어본 적이 있는지 긴가민가했는데
중간에 페이지를 접어둔 자국이 있는 걸 보면 한 번은 읽다 말았던 모양.



97년도의 책 소개 기사인데 사실 이 책이 저렇게 심각한 메시지를 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주 평탄하다고 해야 할까.
영국의 흐리고 음울한 날씨만큼이나 이야기의 이미지 역시 흐릿하고
매기의 탄생처럼 극적인 내용이 있지만 그마저도 매우 밋밋한 느낌이다.
사건을 통해 특별한 교훈을 느끼게 해준다기보다 '그냥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정도의 담담한 설명에서 끝나는
느낌이랄까. 독자가 책 속에서 보이는 것을 향해 더 깊이 파고들어 자발적으로 가치를 평가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보는 데서 끝나는 수준이다. 다만 주변 환경 묘사가 아주 상세하다는 장점은 있는데
내게는 '영국'의 도심과 숲을 떠올릴 만한 이미지가 거의 없어서
오히려 지나친(?) 묘사가 내용 진행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다소 지루하게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었고 다 본 뒤에는 읽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음, 나는 모든 책은 읽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이 된다고 보는 주의라서...

1)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잠잠한 글도 있구나, 하고 깨달았고
(아마도 주인공의 어조가 무덤덤하고 우유부단한 이유도 있을 테고 날씨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맑은 날이 거의 없더라.)
2) 애쉴리가 그의 동생 더글라스에게 쓴 편지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쉴리의 편지를 읽으면서 의도적으로 '나도 편지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저 동생에게 시시콜콜하고 이상한 내용까지 써서 보내는 그의 글이 재밌다는 생각을 한 것인데
거기서 요즘의 SNS나 메신저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무언가(좋은 것)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다 우연찮게 편지를 쓸 일이 생겨서 '이왕 쓰는 거 친구들한테도 써보자'가 된 것.
그래서 지난 달 중순부터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있다.
3) 모든 책의 순기능이지만, 이 책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삶을 보며 나와 다른 삶, 다른 가정의 모습, 다른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진짜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겉으론 멀쩡해보여도 한두 가지 문제 없는 사람이나 가정은 없는 듯.

1998년부터 책장에 꽂혀 있기만 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이 책을 읽고 나니
약간은 마음이 홀가분하다. 딱 이 책 한 권이 빠져나간 홀가분함.
쓰지 않고 그저 가만히 뒀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내가 느꼈던 부담 혹은 불편함이었다.
물론 '다 읽기 전의 이 책'과 같은 것들이 아직도 더 있지만
이 묵은 책도 결국 다 읽었는데 안 되는 게 어딨을까.
느려도 꾸준히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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