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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재미/책

난리 뻐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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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읽던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번역문이 너무 껄끄러워서 덮어두고 편한 책을 찾아봤다.
책장을 쭉 보다가 동화와 청소년 소설이 몇 개 있는 걸 보고 꺼내놨는데
그중 하나가 <난리 뻐꾹이야>다.
아마 국민학교 시절에 어린이 방송으로 나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표지에 코미디언 최병서 씨(최병팔 역)가 나와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어릴 때 분명히 이 방송을 봤을 텐데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ㅠㅠ
이 책은 어린이 소설인 만큼 글의 호흡도 짧고 내용도 쉽다.

민지와 병팔이의 학교 생활이 중심 소재인데 한두 번은 읽었던 모양인지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떤 구절은 본 듯한 기분이 든다.
확실한 건 번역서보다 글이 매끄럽다는 점.
물론 잘 번역된 글은 국내 작가가 쓴 글만큼 좋을 수 있지만 그래도 차이는 있다.
아무튼 이 <난리 뻐꾹이야>에서 구사되는 표현들은 아주 자연스럽다.
번역문도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서 선배(?) 번역가들이 국내 작가들 책을 읽으라고 하는 모양이다.

국민학생, 요즘이라면 초등학생이겠지만, 그렇게 어린 나이에는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한다.
나도 분명히 그랬을 텐데 그런 사고방식을 어른이 되어 글로 읽자니
참 재미있더라. (물론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른이지만 ;;) 그와 함께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친구들과 하던 놀이도 생각이 났고
부산에 있는 모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2년 전인가 가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운동장이 작아 보이더라. ㅎㅎ

책을 읽다 보면 딱 어린이의 감성과 기준으로 생각하는 민지와 병팔이와 다르게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한다.
'여자는 대학을 나와야 시집을 잘 간다.' '이번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와 짝이 되거라.'
현 시대에서는 어찌 보면 귀여운 수준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약 20년 전에 부모들의 저러한 사고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 지금의 각박한 세상을 만든 건 아닌가,
이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명랑 소설을 보면서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생각.

책 중간중간에 페이지가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어서 내용을 건너 뛰면서 읽어야 했는데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괜히 전체 내용을 다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1991년도 책이라 아무래도 구하기는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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